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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으로 떠나는 순례-김병종의 '카리브해'] 낯선 대기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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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적인 수묵으로 단련된 화가가 돌연 원색적인 색채로 뒤범벅된 풍경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동양화가 김병종이 라틴아메리카를 돌면서 실제 그런 상황에 빠져버렸다. 쿠바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페루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에게 충격을 준 것은 ＇색깔의 폭주＇였다. 호흡을 가다듬을 여력 없이 원색의 물결이 그를 덮쳤다. 김병종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원색의 생생한 야만＇ 앞에 넋을 잃어버린 듯하다. 도대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색깔이 들썩거린다. 빨간 지붕, 하얀 벽면, 파란 창문, 녹색의 야자수, 노랑과 분홍, 연둣빛 선인장, 크레파스로 쓱쓱 문질러 놓은 듯 한 옥색 바다 등.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한 사람이 헤엄치고 있고, 그 곁을 색동저고리를 입은 새가 정겹게 배회한다.
작가는 형형한 자연에 도취하여 카리브해를 묘사하였다. 어찌나 그곳 풍광이 강렬한지 대담한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선인장과 가옥을 릴리프 기법을 기용하여 볼록 세웠고, 바다를 널찍하게 할애하여 화면을 단순화했다. 이 작품은 이색적으로 하늘과 바다의 구분이 따로 없다. 공기와 물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로 실물의 형태를 녹여버린다. 화면을 에워싸는 것은 거칠 것 없는 햇빛, 햇빛에 바스라져버린 시간의 움직임, 이역의 구름, 그런 자연에 어린이처럼 물에 첨벙 뛰어든 태평스런 남정네다. 김병종은 자신을 화들짝 놀라게 만들었던 색채덩어리로서의 남미와의 접촉이 있다. 점잖은 흑백의 화가가 낯선 대기 속에 빨려들어 컬러리스트가 된 배경에는 이처럼 색채를 교사한 남미가 있다. 생명력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이국의 풍경, 낭만과 환상이 용솟음치는 카리브해에 눈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이 컬러리스트가 된 전부는 아니다. 그가 컬러리스트로 변모한 데에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저 신묘막측한 자연이 작가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온 데에 기인한다. 사실 김병종이 목격한 카리브는 하나님의 기쁨이 유난히 넘쳐흐르고 확장되는 곳이다. 그런 카리브를 태연하게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생동하는 것을 환희로 맞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너선 에드워즈의 말처럼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즐거워할 때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이 드리운 교교(皎皎)한 풍경을 보고도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이 된다. 김병종이 카리브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까닭을 알 만하다.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국민일보) 2008-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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